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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관적인 생각들

세 치의 혀,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– 누구의 탓인가?

우리나라 속담엔 ‘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’라는 말이 있다. 이 속담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. 그렇다,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. 말은 우리를 위로하기도 하고, 격려하기도 하고, 또 좌절 시키기도 하며, 실망 시키기도 한다. 말만큼 쉽게 뱉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치명적인 도구는 없을 것 같다.

그럼 이 속담을 글자 그대로 해석을 해보자. 과연 실제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게 옳은 방법일까? 현실에선 대부분 그런 사람들을 양아치, 혹은 사기꾼이라고 칭한다. 현실에선 내가 잘못해서 빚을 지거나 잘못했다면, 열심히 갚아 나가거나 잘못에 따른 벌을 받는 게 마땅한 이치일 것이다.

요즘 젊은 세대가 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. 경제 성장은 이룰 만큼 이룬 상태에서 더 이상 고속 성장은 없을 거란 게 대세론이다.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찌 보면 과도기를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.


그렇다면, 이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?

방송이나 유튜브, 인터넷을 통해 연예인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청춘을 위로하는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. 하지만 나는 이 영상들을 보면서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. 영상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주 요점은 “우리”가 못 살고, 쓸모없게 느껴지는 것은 결코 “나”의 잘못이 아니란 것이다. 거기에 청중들은 하나같이 공감을 하며, 위로받는듯한 표정을 짓는다.

이게 과연 올바른 위로일까?

만약 이것이 올바른 위로라면, 왜 지금 시대의 젊은 세대는 분노로 가득 차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. 아이러니하게도, 분노를 가장 유발케 하는 장치는 이런 종류의 위로이다.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마치 모든 게 잘하고 있고, 잘 될 거라고 말하면서 결국 모든 잘못은 사회, 정치, 경제 탓으로 돌린다. 이런 식의 위로는 참된 위로가 아니라 분노의 대상자를 “나”란 존재에서 “타”존재로 바꾸는 속임수일 뿐이다.

사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편하다.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, 내 삶의 방식이 결코 틀린 게 아니고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어서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좋겠는가.

하지만 이건 참된 위로가 아닐뿐더러 책임감이 결여된 값싼 말일뿐이다. 온 국민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그 영향력을 인정받고 서있는 사람이,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, 그저 허울뿐인 헛소리만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!

우선, 그런 곳에 나올 정도로 그 대중성을 인정받은 사람이라면, 자신이 뱉는 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를 인식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.

그리고 청중은 그 말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. 위로를 받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, 살면서 좋은 말을 듣는 건 좋다. 하지만, 그 말을 전부 다 받아들여선 안된다.

우리는 이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 곳인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. 이것은 현실이고 우리가 신의 영역에 도달하지 않는 이상, 모두가 평등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은 유토피아일 뿐이다. 만약 이런 사회가 실현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, 그는 분명 현재 시스템에서 가장 혜택을 받는 사람 중 하나로 이미 배가 많이 불러있는 사람일 것이다.


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?

먼저, 우리는 분노를 표출할 대상자를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우선적으로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. 남을 탓하기 전에, 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. 만약 대학생이라면,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거치며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, 얼마나 내 미래를 위한 투자를 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. 만약 직장인이라면, 내가 대학생 때 능동적으로 공부를 했는지, 술만 마시고 놀러 다닌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.

이는 굉장히 불편한 과정이다. 하지만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정말 잔인하면서도 꼭 거쳐야 한다.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의 선택의 결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.

인생은 현실이다. 나에게 위로하고 있는 그들은, 자신의 성공의 여유로움 속에서 남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런 책임감 없는 말들을 할 수 있는 것이다.

결국 나를 완벽히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. 나는 나의 가장 날카로운 비평가임과 동시에 위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. 끝없는 자기비판을 통해 나태해지지 않고 전진하며 발전할 수 있어야 하며, 끝없는 사랑으로 나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주며 쉬어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.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, 나만이 해야만 한다.


잊지 말자, 천 냥 빚을 갚을만한 달콤한 말일지언정, 말에 현혹되지 말고 냉철하게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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